복어의 도시, 부산 — 복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부산이 복어 소비 1위 도시인 이유. 복국의 맛과 해장 문화, 그리고 복어에 대한 오해 풀기.
와앙부산 편집팀 · 글 사진 강동일 · 2026.06.13
부산에 처음 온 사람이 복국집 메뉴판 앞에서 잠깐 머뭇거리는 순간이 있다.
'복어... 먹어도 되는 건가?'
물론 된다. 아니, 안 먹으면 손해다. 부산 사람들은 복어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숙취가 있는 아침이면 제일 먼저 복국집을 떠올린다. 이 도시에서 복어는 '위험한 생선'이 아니라 '가장 믿음직한 아침 한 그릇'이다.
왜 하필 부산이 복어 도시가 됐을까
복어는 수온이 낮은 깊은 바다를 좋아한다. 한국에서 복어가 많이 잡히는 해역은 남해와 서해인데, 그 어획량의 상당 부분이 부산을 중심으로 유통된다. 부산공동어시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수산물 경매 시장으로, 전국 복어 유통의 핵심 거점 중 하나다. 복어를 다루는 문화가 오래도록 이 도시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지리적·산업적 배경이 있다.
여기에 항구 노동자들의 식문화가 더해졌다. 새벽부터 몸을 쓰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속을 편안하게 달래주면서도 담백하게 기운을 채워주는 국물이었고, 복국의 맑고 깊은 육수가 그 역할을 했다. 부산이 복어 소비량 전국 1위라는 건 통계가 아니라 체감으로 느껴진다. 서울에서 복어 요리가 '특별한 날의 식사'라면, 부산에서는 그냥 일상의 음식이다.


사진:남해복국
복지리와 복매운탕 — 같은 복어, 다른 얼굴
복국집 메뉴에는 보통 두 가지 국물 요리가 있다.
복지리와 복매운탕.
같은 재료지만 전혀 다른 음식이다. 복지리는 맑다. 투명한 국물에 복어 살과 콩나물, 미나리가 들어가고, 끓이면 끓일수록 복어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감칠맛이 국물에 배어든다. 자극이 없다. 오히려 조용하게 속을 어루만지는 느낌에 가깝다. 뚝배기 뚜껑을 열면 올라오는 담백한 김, 그게 복지리의 첫인상이다.
복매운탕은 다르다. 고춧가루와 양념이 들어가 빨갛고 칼칼하게 끓여낸다. 전날 술자리가 격했다면 복매운탕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다. 속을 훑어내듯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맛이다. 같은 복국집에서 두 메뉴를 모두 내는 경우가 많으니, 그날 내 몸 상태에 따라 골라 먹으면 된다. 맑은 국물이 당기면 복지리, 얼큰하게 끓이는 게 필요하다면 복매운탕.
메뉴는 이 두 가지가 전부가 아니다. 제대로 된 복국집이라면 복수육, 복불고기, 복찜, 복전골, 복튀김까지 갖추고 있다. 혼자라면 복지리 한 그릇으로 충분하지만, 두세 명이 함께라면 복수육이나 복전골을 곁들여 상을 차리는 것도 부산식 복어 즐기기다. 복튀김은 바삭한 식감 덕에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복어 종류도 눈여겨볼 만하다. 메뉴판에는 참복, 까치복, 밀복, 은복 같은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가격도 제각각인데, 까치복이 가장 기본이다. 처음 방문이라면 까치복 복지리로 시작해보자. 복어가 어떤 맛인지 가장 솔직하게 알 수 있는 선택이다.
복지리에 밥을 말아 먹는 것도 부산식이다. 공기밥이 따로 나오면 맑은 국물에 조금씩 적셔 먹거나, 아예 말아서 한 그릇으로 비워도 된다. 이 조합이 왜 이렇게 잘 맞는지는 직접 먹어보면 안다. 논리가 아니라 혀가 납득한다.
그리고 테이블에 식초가 놓여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한 바퀴 둘러보자. 부산 복국집에는 식초를 곁들여 먹는 문화가 있다. 맑은 복지리 국물에 식초를 두어 방울 떨어뜨리면 국물의 묵직함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뒷맛이 산뜻하게 정리된다. 처음엔 낯설 수 있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식초 없이는 허전하다. 양은 취향껏 조절하면 된다. 조금씩 넣어가며 내 입맛에 맞는 지점을 찾는 것, 그것도 복지리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복어는 정말 위험하지 않을까 — 오해를 풀 시간
복어에 독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독은 주로 간과 난소, 피부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복어를 조리하려면 반드시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식당에서 나오는 복국은 이미 독이 있는 부위를 모두 제거한 상태다. 수십 년간 매일 복국을 먹어온 부산 사람들이 건재한 게 그 증거다.
복어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비싸다'는 것이다. 물론 황복 같은 고급 품종은 가격이 있지만, 부산에서 흔히 먹는 까치복국은 한 그릇에 1만 원 초중반이면 충분하다. 그 가격에 이 담백한 깊이감이라면, 부산에서 복국은 가장 가성비 있는 해장 한 끼다.
금수복국만 있는 게 아니다 — 부산 복국집의 세계
부산복국 하면 많은 사람이 금수복국을 먼저 떠올린다. 오랜 역사와 이름값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부산의 복국 생태계는 그 이름 하나로 설명하기엔 훨씬 넓고 깊다. 동네마다 수십 년을 버텨온 단골집들이 있고, 저마다의 손맛과 사연이 있다. 오랫동안 부산의 맛을 일궈온 일식 쉐프님의 복국 맛집 리스트를 공개해 본다. 개인적인 맛의 차이가 있다는 점 고려하시기 바란다.
남해 복국 (공동어시장)
대판복국 (남구 대연동)
돌고래할매복국 (진구 서면)
제주복국 (영도)
가마솥복국 (기장)
초원복국 (대연동 본점)
이 집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화려하지 않다는 것이다. 메뉴판이 낡아 있고, 테이블이 비닐로 덮여 있고, 주방 소리가 홀까지 들린다. 그런 집의 복국이 대개 더 깊다. 오래 버텨온 것 자체가 이유다.
부산에서 복국을 먹어야 할 타이밍
사실 복국을 먹는 데 특별한 이유는 필요 없다. 하지만 굳이 꼽자면, 첫째는 전날 야장에서 한잔 걸친 다음 날 아침. 둘째는 겨울 바닷바람을 맞고 들어온 직후. 셋째는 부산에 처음 왔는데 뭘 먹을지 모를 때.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면, 가장 가까운 복국집 문을 열면 된다.
테이블에 앉아 뜨거운 뚝배기가 놓이는 순간, 겁낼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뚜껑을 열면 올라오는 맑고 담담한 김. 한 숟가락 마시는 순간 속이 조용해진다. 그게 부산이 복국을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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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복지리 #복매운탕 #복어 #부산해장 #부산식문화
강동일-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부산을 기억하고 싶어 부산의 골목을 다니며 사진으로 부산을 기록하고 있는 아마추어 사진가 이다.
메타데이터:
카테고리: 식문화
저자: 와앙부산 편집팀
발행일: 2026.06.13
발췌문: 부산이 복어 소비 1위 도시인 이유. 복국의 맛과 해장 문화, 그리고 복어에 대한 오해 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