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갈치 뒷골목, 선지국밥거리 이야기
자갈치시장을 뒤로하고 해안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코끝을 스치는 냄새가 달라진다. 비린내와 뒤섞인 진한 국물 냄새, 그 사이로 유독 도드라지는 알싸한 후추향. 선지국밥거리다. 좌판이 늘어선 골목 초입부터 김이 오르는 뚝배기들이 줄줄이 놓여 있고, 국자로 선지와 고기를 퍼 담는 손길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뽀얀 김이 오르는 뚝배기 앞에 앉아 첫술을 뜨면, 화려하지도 정갈하지도 않은 투박한 맛이 혀에 와닿는다. 강한 후추향이 코끝을 치고 지나가는 그 맛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지만 묘하게 정직하다. 자극적인 첫인상 뒤로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 이 거친 맛이 왜 오랫동안 이 골목을 지켜왔는지 절로 이해가 된다.
이 골목이 자리 잡은 사연은 자갈치시장의 역사와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해방 이후 귀환 동포들과 6·25전쟁 피란민들이 몰려들며 자갈치시장이 전국적인 어시장으로 커가던 1950년대, 그 안쪽 골목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들었다. 새벽부터 배를 타야 하는 어민들, 이불이며 생필품을 사러 온 뱃사람들, 좌판을 벌이는 상인들까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싸지 않으면서도 몸을 든든히 채워줄 한 끼였다. 선지국밥은 그렇게 이 골목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지금도 오래된 가게들이 나란히 문을 열고, 수십 년째 비슷한 손맛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선지가 국밥의 재료로 자리 잡은 역사는 훨씬 더 오래되었다. 조선 후기, 장이 서는 곳마다 주막이 늘어서고 장꾼들이 오가면서 국밥은 서민들의 대표적인 한 끼로 자리를 잡았다. 이른 새벽 장에 나온 상인들과, 밤새 배를 타고 뭍으로 돌아온 뱃사람들에게는 뜨끈하고 든든한 국물 한 그릇이 절실했다. 선지는 값싸면서도 영양이 풍부해 이런 새벽 노동자들의 허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강변이나 포구마다 해장국집이 들어선 것도 이런 이유였고, 자갈치의 선지국밥거리 역시 그 오랜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선지는 다루기가 까다로운 재료이기도 하다. 신선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특유의 비릿하고 무거운 냄새가 국물 전체를 덮어버린다. 특히 돼지 선지보다 소 선지 쪽이 냄새에 훨씬 예민하다고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국밥집마다 재료를 매일 새로 받아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그럼에도 완전히 지울 수 없는 특유의 냄새를 잡기 위해 국밥집들은 강한 향신료에 의존해왔고, 그중에서도 후추는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매운 고춧가루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코끝을 자극하는 후추 향은, 잡내를 누르는 동시에 국물 전체에 묵직한 존재감을 더한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맛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하게 완성되는 이 맛이야말로, 재료의 한계를 향신료 하나로 정면 돌파해온 시장통 국밥의 정체성이라 할 만하다.
지금도 이 골목의 가게들은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개방된 주방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장사한다. 손님이 주문하면 선지와 고기, 채소를 큰 국자로 넉넉히 퍼주고, 선지를 못 먹는 손님에게는 고기만, 선지를 좋아하는 손님에게는 선지를 더 얹어주는 융통성도 여전하다.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자연스레 소주 한 잔이 곁들여지고, 옆자리 낯선 손님과도 몇 마디 말을 트게 되는 것이 이 골목의 오랜 풍경이다.
투박하고 강한 후추향이 나는 이 국밥은, 결국 새벽 노동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맛이다. 화려한 육수나 정교한 고명 대신, 값싼 재료와 독한 향신료로 정직하게 허기를 채워온 역사가 이 한 그릇에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는 거칠게만 느껴질 그 후추향이, 새벽 배를 타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잠을 깨우고 몸을 데우는 각성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자갈치를 지나 해안시장 쪽 골목으로 접어들 때, 코끝을 스치는 후추향을 따라가 보는 것도 부산을 아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