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 국제시장과 부평깡통시장.
좁은 골목 사이사이 좌판에 걸터앉아 후루룩 비벼 먹는 비빔당면은, 화려한 맛집 리스트에 오르내리기 훨씬 전부터 이 골목을 지켜온 음식이다.
삶은 당면에 매콤달콤한 양념장을 붓고, 김치와 시금치를 얹어 쓱쓱 비벼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재료도 조리법도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이 음식이 어떻게 부산을 대표하는 골목 별미가 되었는지, 그 뿌리를 따라가면 시장 자체의 역사와 만나게 된다.
남포동과 부평동 일대의 시장통은 한국전쟁과 함께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임시수도가 된 부산으로 전국의 피란민이 몰려들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부산항과 원도심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살길이 막막했던 피란민들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과 물자를 가져와 좌판에 늘어놓고 팔기 시작했다.
통조림, 즉 깡통을 거래하는 시장이라 하여 '깡통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길 건너 국제시장 역시 비슷한 시기, 일본인들이 철수하며 남기고 간 물자를 팔던 장터에서 출발했다.
두 시장이 나란히 몸을 불려가면서 그 사이 골목에는 자연스레 먹자골목이 들어섰다. 하루 종일 좌판을 지키며 물건을 팔던 상인들에게는 자리를 비우지 않고도 빠르게 배를 채울 음식이 필요했고, 인근에 살던 아낙들이 간단한 먹을거리를 이고 나와 팔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먹자골목의 시작이었다.
시장 골목을 채운 음식들은 하나같이 이런 사연을 품고 있지만, 비빔당면은 그중에서도 시장의 논리를 가장 충실히 따른 음식이었다.
비빔당면은 바로 이런 시장통의 사정 속에서 태어났다. 국물 없이 무쳐 먹는 당면은 뜨거운 국밥이나 찌개보다 준비가 훨씬 간단했다. 미리 삶아둔 당면에 양념장을 끼얹고 고명 몇 가지만 얹으면 곧바로 손님상에 낼 수 있었으니, 좌판을 떠날 틈 없이 장사에 매달려야 했던 상인들에게 이만한 한 끼가 없었다.
게다가 당면은 부피에 비해 값이 싸고 오래 두어도 변질되지 않아 넉넉지 않은 시절의 시장 음식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매콤한 양념장은 허기를 빠르게 달래주었고, 새콤한 김치와 아삭한 시금치는 자칫 텁텁할 수 있는 당면에 산뜻함을 더했다.
화려한 재료 하나 없이도 맛의 균형을 맞춘 이 조합은, 있는 재료로 최대한 맛을 내야 했던 시장 아낙들의 손끝에서 다듬어진 결과였다.
세월이 흐르며 비빔당면은 시장 상인들만의 새참에서 벗어나, 남포동을 찾는 이들이 일부러 찾아 먹는 별미로 자리를 옮겼다.
인근 목욕탕에 다녀온 뒤 온 가족이 한 그릇씩 사 먹던 동네 사람들의 추억부터, 방송에 소개되며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 오늘날의 인기까지, 이 음식이 걸어온 길은 곧 남포동이라는 동네가 걸어온 길과 겹친다.
지금도 깡통시장을 찾는 손님들 사이에는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와서 먹던 그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이 익숙한 맛은, 화려한 유행보다 오래가는 골목 음식의 힘을 보여준다.
유부전골이나 오뎅 같은 이웃 좌판 음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비빔당면은 지금도 깡통시장 골목 한복판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거창한 육수를 우리지도, 정교한 손질을 거치지도 않는 이 음식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쟁 통에 삶의 터전을 새로 일궈야 했던 사람들이,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맛이기 때문이다. 비빔당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있으면, 좌판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버텨내던 시장 사람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그려진다.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되는 음식이 있다면, 아마 이런 맛일 것이다.
다음에 남포동 골목을 걷다 좌판 앞에 앉게 된다면, 당면 한 젓가락 속에 시장통의 칠십여 년이 함께 비벼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