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에게 돼지국밥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음식이다.
어느 집은 뼈를 오래 고아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내고, 어느 집은 고기만 삶아 맑고 개운한 국물을 낸다. 색은 달라도 새우젓 한 숟갈과 부추, 다진 마늘을 얹어 후루룩 넘기면 그것으로 한 끼가 완성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문을 여는 국밥집마다 뚝배기 부딪히는 소리와 뼈를 우리는 냄새가 골목을 채운다.
그런데 이 익숙한 국밥 한 그릇의 뿌리를 캐다 보면, 정작 하나의 정답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돼지국밥의 유래에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얽혀 있고, 국물의 빛깔이 갈리는 것도 그 얽힘에서 비롯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6·25전쟁과 함께 시작된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전국의 피란민들이 임시수도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이북에서 내려온 이들 중에는 고향에서 소고기로 끓인 '가릿국밥'을 즐겨 먹던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피란지 부산에서 소고기는 구하기 힘든 귀한 재료였다.
대신 부산 곳곳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서는 고기를 가공하고 남은 돼지 뼈와 머리 고기, 잡육 같은 부산물이 흘러나왔다. 피란민들은 이 값싼 재료를 오래 고아 국물을 냈고, 뼈를 진하게 우려낸 국물은 자연스레 뽀얗고 걸쭉해졌다.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끓인 국밥이 허기진 사람들의 한 끼를 채웠고, 가릿국밥의 조리법에 부산이라는 환경이 더해지며 지금의 뽀얀 돼지국밥이 태어났다는 것이 이 설의 핵심이다.
하지만 돼지국밥의 뿌리를 부산 하나로만 좁혀 말하기는 어렵다. 부산에서 유독 자주 보이는 상호인 '밀양돼지국밥'이 그 단서다.
밀양에서는 이미 1938년, 전쟁이 나기 십여 년 전부터 무안 장터를 중심으로 돼지국밥집이 영업하고 있었다. 장이 서는 날이면 장꾼들이 허기를 달래려 돼지 삶은 육수에 밥을 말아 먹던 것이 시초로 전해진다.
이 밀양식 국밥은 뼈를 오래 우리기보다 고기 위주로 맑게 끓여내는 방식이어서, 부산식의 진하고 뽀얀 국물과는 결이 달랐다. 전쟁 이후 밀양 사람들이 부산으로 생활 터전을 옮기면서 그 조리법도 함께 부산에 스며들었다.
결국 전쟁 이전부터 존재하던 경남 지역의 향토음식과, 전쟁이 낳은 이북 피란민들의 대체 음식이 부산이라는 한 도시에서 만나 뽀얀 국물과 맑은 국물, 두 갈래로 나란히 자리 잡은 셈이다.
여기에 더해 우암동과 범일동 일대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피란민들이 몰려 살던 이 동네들은 밀면의 탄생지이기도 했다.
천막을 치고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국밥은 값싸고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였다. 가마솥에 돼지 뼈를 종일 고아 국물을 우려내고, 남는 고기 부위까지 알뜰히 삶아 한 그릇에 담아내는 방식은 넉넉지 않은 살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생존의 지혜였다.
국물이 뽀얗든 맑든 상관없이, 그 시절 국밥이 지향한 것은 결국 하나였다. 적은 재료로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었다.
이처럼 여러 갈래의 기원설이 공존하고 국물의 빛깔마저 갈린다는 것은, 어느 하나가 틀리고 다른 하나가 맞는 문제라기보다 돼지국밥이 애초에 어느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음식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이들의 그리움과, 장터 사람들의 오랜 생활 지혜와, 궁핍한 피란살이의 절박함이 한데 뒤섞여 지금의 국밥 한 그릇을 완성한 것이다.
부산식과 밀양식은 오늘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경계가 흐려졌지만, 각 집마다 국물의 맑기와 깊이, 고명의 구성이 조금씩 다른 데에는 저마다 다른 뿌리를 가진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니 다음번 국밥 한 그릇을 마주할 때는, 그것이 뽀얀 국물이든 맑은 국물이든, 그 안에 담긴 것이 단지 돼지 뼈나 고기를 우린 육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려도 좋겠다.
고향을 등지고 남쪽 끝까지 밀려온 사람들의 허기와,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궁리를 거듭한 손끝의 지혜가 함께 끓고 있다.
이북의 가릿국밥과 밀양 장터의 국밥, 그리고 피란촌의 절박함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이 그릇은, 어느 한 지역이나 한 사람의 것이라 말할 수 없는 부산 전체의 음식이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그렇게,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먹이며 버텨낸 시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