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은 사 왔는데, 그 창가가 자꾸 생각나서
빵은 다 먹어버렸고, 사진은 한 장도 남기지 않았어요. 토북베이커리에서 사 온 소금빵과 초코크루아상 이야기예요. 가게에서는 돌담이며 마당이며 부지런히 찍어 놓고, 정작 먹을 때는 카메라 생각을 못 했으니 맛있었다는 증거가 조금 부족하네요. 바삭한 소금빵에 짭짤한 맛이 배어 있던 건 또렷한데요. 이상하게도 그 빵을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는 자리가 있어요. 제가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창가예요.
2023년 여름에 다시 찾은 토북은 여전히 조금 뜻밖의 곳이었어요. 큰 차들이 다니는 도로와 공장들 사이에서 한옥을 만나는 일이 처음엔 낯설었거든요. 그런데 돌담의 둥근 입구를 지나고 나면 바깥에서 품었던 의문은 잠시 잊혀요. 기와지붕 아래로 초록 마당이 펼쳐지고, 오픈 시간대인데도 벌써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빵만 사 가려던 사람에게 보여주기에는 꽤 곤란한 풍경이었죠.

예뻐 보이는 자리에 모두 앉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작은 테이블에 등받이도 없는 야외 자리는 구경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제 눈에 들어온 건 실내의 큰 유리창 쪽이었거든요. 높은 천장 아래 앉아 마당을 바라보면서, 빵을 조금씩 떼어 먹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그날도 시간이 없었어요. 첫 방문에 이어 두 번째까지, 창가는 눈으로만 보고 진열대 앞으로 갔죠.
여러 빵 가운데 제게 또렷하게 남은 건 소금빵이에요. 초코크루아상도 골랐고 몇 가지를 더 담았지만, 직접 먹지 않은 빵들은 기억이 흐릿해요. 장바구니를 챙겨 오는 것마저 잊어 종이가방을 따로 샀으니, 여유로운 카페 시간을 보내기에는 여러모로 준비가 덜 된 사람이었네요. 빵을 들고 나서면서도 안쪽에 잘 꾸며진 공간이 눈에 밟혔어요. 두 번 왔는데 커피 한 잔을 못 마셔봤다는 게 어쩐지 억울했어요.

그때 앉지 못한 자리를 아직 떠올리는 건, 카페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 뭔지 알아버려서인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는데 그곳에 있을 시간이 없는 것. 가게는 충분히 둘러봤고 빵도 맛있게 먹었지만, 마당을 보며 한참 앉아 있는 오후는 통째로 남겨 두고 온 셈이니까요. 반대로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고르지 못했는데도, 돌아와 보니 그 자리 덕분에 좋았던 날이 있어요.
남아 있던 자리가, 그날의 좋은 자리가 되기까지
2025년 8월의 마지막 날, 친구와 점심 모임을 마치고 테라로사 수영점에 갔어요. 부산에 살 때부터 궁금했던 곳인데 위치가 애매하게 느껴져 미루다가, 마침 근처에서 약속이 잡힌 덕분에 드디어 가게 됐죠. 도착해서는 카페로 곧장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F1963의 대나무 길을 걷다 보니 생각보다 공간이 컸고, 서점과 식물 구경까지 하느라 커피 한 잔 앞에 산책 한 바퀴가 먼저 놓였거든요.

1963년에 지어져 2008년까지 와이어를 만들던 공장에는 이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모여요. 제가 간 주말에는 부산 사람들이 여기 다 와 있나 싶을 만큼 북적였어요. 공장 설비를 살려 놓은 넓은 실내를 구경하는 건 재미있었지만, 주문에도 줄을 서야 했고 마음대로 자리를 골라 앉을 상황은 아니었죠. 결국 메인 공간에서 떨어진 제일 안쪽 테이블로 갔어요. 그때 남아 있던 자리가 거기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앉고 나니 오히려 좋았어요. 중앙의 북적임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니 친구와 대화하기가 편하더라고요. 더운 날이라 테이블에는 시원한 에이드와 커피를 올려 두었고, 점심부터 하던 이야기를 오후까지 이어갔어요. 분명 한참 이야기했는데도 더 할 말이 남아 있는 친구와의 시간은 늘 신기해요. 넓은 공간을 실컷 구경하고 들어왔지만, 그날 테라로사의 기억은 결국 가장 안쪽의 작은 테이블로 모여요.

자리가 하루를 바꾸는 순간은 아주 사소하게 오기도 해요. 빈 테이블에 앉았다가 생각보다 편해지거나, 실내에 있다가 문밖을 보고 마음이 달라지는 식으로요. 테라로사보다 몇 해 앞선 2021년 여름, 청사포역에서도 그랬어요. 동생과 조개구이를 먹고 제가 좋아하던 한옥 카페에 다시 갔는데, 이미 여러 번 찍어 본 돌담과 자개 장식 입구 앞에서 또 사진을 찍었어요. 좋아하는 곳에 누군가를 데려가면, 익숙했던 모양을 새삼 다시 보게 되나 봐요.

실내에는 오래된 시계와 자개장, 서까래 아래 놓인 식물들이 어울려 있었어요. 좌식 자리도 예뻤지만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쪽이 제 취향이라, 여기에 와서도 눈으로 구경하는 자리와 실제로 앉는 자리는 달랐죠. 그러다 날씨가 좋고 뒷뜰도 비어 있는 걸 보고 자리를 옮겼어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시원해서,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 싶었어요. 바다는 조개구이를 먹으며 봤으니 그 뒤의 시간은 이 작은 마당에서 보내도 충분했어요.
사진에는 레몬 조각이 든 잔과 곡물 토핑을 올린 잔이 남아 있어요. 평일 낮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고, 서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는 건 분명해요. 마음에 든 카페를 보여주고 싶어 데려갔다가, 제가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하나 보태고 온 날이었죠.

토북의 창가도 언젠가는 이런 기억이 될까요. 밖에서 보고 지나친 자리 말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난 자리요. 거창한 계획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다음에 그 빵을 사러 갈 때는 조금 더 시간을 비워 가면 되겠죠. 장바구니는 챙기고, 소금빵은 봉투에 넣기 전에 접시 위에 한 번 올려보고요. 먹기 전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이번에도 잊더라도, 적어도 창가를 두고 나오지는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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